모든 것에 감사! (feat. 삼각김밥)

덴마크에서 지낸지 벌써 반년이 되어갑니다. 시간 참 빠르다 싶습니다 ^^;;

늦은 시간에 일하다보면, 출출해지고, 삼각김밥이 먹고 싶은 때가 문득 문득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참 많이 참 자주 먹었던 김밥인데, 외국에서는 제일 먹기 힘든 음식 중에 하나입니다. 

 

5월에 삼각김밥, 관련된 추억 하나 꺼내봅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올라갈 무렵, 한창 벤처 붐이 일던 그 때, 저희 아빠도 그 대열에 합류하셨습니다. 

정말 타고난 연구원 체질인 아빠인데, 사업을 한다고 하실 때에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는지 ^^;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동업자에게 철저하게 사기를 당하셨고, 모든 회사의 빚은 아빠 앞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동안 벌어놓으신 재산, 차, 집은 모두 빚 갚는데 쓰였고, 그리고도 빚이 남았습니다.

이사를 가고, 검찰 조사를 받으러 다니시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매일 카드사 전화에 시달리고,

심지어 그 무렵 차 사고까지 나셔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습니다. 

 

고3이었던 제게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은, 혹시 마음 약한 우리 아빠가 다른 생각을 하시지는 않을지,

혹시라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시지는 않을지 매일 걱정을 했던 시간입니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늦는 날은 걱정이 되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아빠는 그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 주셨습니다.

 

당시 검찰 조사는 잘 끝났고,

회사의 남아 있던 자재들과 공장은 좋은 사람에게 넘겼고,

남아 있던 빚은 십년에 걸쳐 다 갚았고,

신용불량자에서 벗어나셨고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셨고, 

더이상 늘 주눅들고 그늘진 아빠가 아니셔서.. 참 감사합니다.  

 

아!! 삼각김밥!! ^^ 

당시 저희 집은 쌀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가끔 쌀을 보내주셨는데, 그래도 쌀이 떨어질 때가 있었고 귀했습니다. 

지금처럼 복지 시스템이 갖추어진 때가 아니어서, 그럴 때는 영락없이 굶었어야 했던 때였습니다. 

 

그 때 편의점을 하시던 교회 권사님이, 자정만 지나면 유통기한을 넘긴 삼각김밥을 정리해서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팔 수는 없었지만 먹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음식이었고, 권사님 가정에서 가져다 드시던 그 삼각김밥을 저희에게 나눠 주신 것이라 정말 감사했습니다.) 얼마나 별미였는지,, 온가족이 함께 편의점에 매일 들러 삼각김밥을 챙겨오던 날도 이제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오늘은 어떤 삼각김밥이 남아 있을지 기대하며 가던 길도, 오늘 받은 삼각김밥을 기대하며 집에 돌아오던 날도,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을 매일 경험할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15년쯤 지난 지금, 

감사하게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아빠도 엄마도 자신의 직업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계시고, 

어렸던 세 딸들도 모두 장성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세계도 어려워지고 한국도 어려워질 것이다. 제 2의 IMF 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15년 전에, 아빠의 사업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우리가 아빠를 책망하고 등 돌렸다면 아마 아빠는 완전히 무너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엄마 아빠가 무너지셨다면, 저도 같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저희 가족은 아마 산산조각이 났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하라는 말씀 붙들고 그 시간 이겨내니, 그 시간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삼각김밥은 보기도 싫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너무 먹고 싶은 음식이네요!! :)